안녕하세요. 장승수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상속의 포기에 관해서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상속법에서는 상속을 받는 사람을 상속인이라고 하고, 돌아가신 분을 피상속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속에서는 재산만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이 지고 있던 빚도 상속됩니다. 그래서 고인(피상속인)에게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경우에는 상속인들에게 상속이 해가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속의 포기는 그냥 포기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이 돌아가신 후 원칙적으로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심판청구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상속포기심판청구라고 해서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 법원에 가면 양식이 있으므로 그 양식에 맞추어 작성하고 제출하면 됩니다.1) 그러면 법원에서는 “청구인들이 몇년 몇월 몇일자로 한 피상속인 망OOO의 재산상속을 포기하는 신고를 수리한다.”라는 심판을 해 줍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상속인들은 상속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인의 빚도 물려받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하면 그 다음 순위의 상속인이 상속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선순위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 후순위 상속인들도 상속을 포기해야 빚이 후순위상속인들에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부친이 사망하고, 부친의 배우자 즉 모친과 자녀(A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손자녀(A의 자녀)들이 있는 경우를 상정해 보겠습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고인의 직계비속2)이 제1순위 상속인입니다. 직계비속이란 고인으로부터 직계로 이어져 내려가는 혈족으로서, 아들, 딸, 손자, 증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아들, 딸, 손자, 증손은 모두 직계비속이지만 고인과 촌수가 가장 가까운 아들, 딸이 1순위 상속인이 되고, 손자는 2순위, 증손은 3순위가 됩니다. 그리고 배우자는 1순위 상속인과 동순위 상속인 즉 1순위 상속인이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친의 빚이 많아서 1순위 상속인들인 모친과 자녀(A의 형제자매)들이 상속을 포기했다면, 모친과 자녀(A의 형제자매)들은 상속인이 아닌 것이 되므로, 2순위 상속인인 손자(A의 자녀)들이 자동으로 상속인이 됩니다. 따라서 손자(A의 자녀)들도 상속을 포기해야 비로소 부친의 빚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 사례 1]
실무상 자주 있는 유사한 사례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친이 사망했는데, 배우자(모친)와 자녀들이 있고, 사망한 부친의 형제자매가 생존해 있는 경우를 상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에 1순위 상속인은 배우자와 자녀들이고, (부친의) 형제자매는 2순위 상속인입니다. 따라서 1순위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했다면 (부친의) 형제자매 또한 상속을 포기해야 부친의 빚을 상속하지 않게 됩니다. [아래 그림 참조 – 사례 2]
이번에는 조금 더 복잡한 경우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A가 배우자와 자녀들을 남기고 사망했는데, A의 모친이 생존해 있었고, A의 형제자매도 생존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A가 빚을 많이 지고 있어서 1순위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을 포기하였습니다.
한편 우리 민법에서는 직계비속이 1순위 상속인이고, 그 다음으로 직계존속이 2순위 상속인이 됩니다. 그래서 A의 직계존속인 모친이 혼자서 상속인이 되었습니다. A의 형제자매는 3순위 상속인이기 때문에 2순위 상속인인 모친이 있으므로, A의 형제자매는 상속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에 따라 A의 빚은 모두 A의 모친이 떠안았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 사례 3-1]
이러한 상황에서 A의 모친이 A의 빚을 다 갚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하였습니다.
A의 모친을 기준으로 하면 사망한 A와 A의 형제자매들이 모친의 자녀들로서 1순위 상속인이 됩니다. 그런데 A는 이미 사망했으므로 상속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A의 형제자매들이 상속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A의 형제자매들은 A의 모친이 상속받은 A의 빚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상속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A의 형제자매를 제외하고 나면 모친의 사망으로 상속인이 될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편 A의 처와 자녀들은 이미 A의 빚을 떠안지 않으려고 상속을 포기했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A가 남긴 빚을 상속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만일에 A가 모친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았다면 모친이 사망한 경우에 A는 모친의 상속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A가 모친보다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상속인이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이와 같이 원래 상속인이 될 사람(A)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피상속인(모친)보다 먼저 사망했고,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있는 경우에는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A를 대신해서 모친의 상속인이 됩니다. 이를 민법에서는 대습상속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A의 모친이 사망했을 때 상속인은 A를 대신한 A의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A의 형제자매들이 공동으로 상속인이 됩니다. [아래 그림 참조 – 사례 3-2]
그런데 A의 형제자매들은 상속을 포기하여 모친으로부터 빚을 물려받지 않았는데,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상속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A의 배우자와 자녀는 A가 사망했을 때 상속포기를 한 것이지, A의 모친이 사망했을 때는 따로 상속포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상속포기를 안 하더라도 당연히 A의 빚이 모친에게 갔다가 모친의 사망으로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모친의 사망에 따른 상속에 대하여 상속포기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에서 우리 대법원은 “A의 사망 후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포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A에 대한 상속포기에 지나지 않아 그 효력이 A의 모친의 사망에 따른 대습상속에까지 미친다고 볼 수 없다. 모친의 사망에 따라 A를 피대습자로 한 대습상속이 개시된 후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상속의 효력을 배제하고자 하였다면, A에 대한 상속포기와는 별도로 다시 민법이 정한 기간 내에 상속포기의 방식과 절차에 따라 모친을 피상속인으로 한 상속포기를 하였어야 할 것이다.”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4다39824 판결).
대법원 판결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A의 사망에 따른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포기를 하였으나, 모친의 사망에 따른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포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친이 남긴 빚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A의 배우자와 자녀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황당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해서 A의 배우자와 자녀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무조건 빚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또 아닙니다.
A의 배우자와 자녀들처럼 상속채무(빚)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해서 상속포기를 못한 경우에는 빚이 상속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특별한정승인제도라고 합니다.
한정승인이란 상속인이 상속으로 취득할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빚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상속재산과 빚을 물려받기는 하지만 빚은 물려받은 재산만큼만 갚는 조건으로 상속을 하겠다는 것이 한정승인입니다. 가령 상속재산이 1억 원 있고, 상속채무(빚)는 1억 5,000만 원이 있는 경우에 한정승인을 하면 물려받는 상속재산 1억 원을 한도로 하여 빚을 갚는 조건으로 상속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정승인을 하면 빚은 1억 원만 갚으면 됩니다. 이에 비해 한정승인을 하지 않고 상속을 받으면 1억 원을 상속받고 빚도 1억 5,000만 원 다 갚아야 합니다.
따라서 A의 배우자와 자녀들 같은 처지에 놓이신 분들은 특별한정승인을 통해서 모친을 거쳐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온 A의 빚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상속의 포기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상속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혹시라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신 분이 있으시면 절망하실 필요는 전혀 없으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참고로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법원 전자민원센터의 상속포기심판청구서 양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상속포기심판청구서 양식 보기
2) 자기로부터 직계로 이어져 내려가는 혈족. 아들, 딸, 손자, 증손 등을 이른다.